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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은 못 참는다.아니 안 참을꺼다.안 그래도 오전내내 작업하고 점심까지 굶어가며 겨우 완성한 기획안이 이 대리한테 신랄하게 까여서 분출하지 못한 짜증이 가득 쌓여있는데 벽 너머로 들려오는 저 소리,미치겠다.
일주일정도 전에 이사온 사람인데 인사도 안하러 다녀서 얼굴도 모른다.
아마 왔었어도 내가 집에 없었을꺼다.일주일째 야근중이라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가니까. 이번에 우리 부서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서 아마 꽤나 오랫동안 이 피곤하고 예민한 상태가 지속될 것 같은데,침대에 몸을 뉘이고 잠을 청하기 시작할때마다 들려오는 저 소리,
헤비 메탈.
음악 취향 한 번 독특하다.그래 듣는건 좋다.개인의 취향이니,그런데 굳이,이 시간에.
굳이,저렇게 크게. 미치겠는거다.
야근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에 소음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까지 딱 사망이란 친구가 턱 밑까지 쫓아와서 참다참다 옆집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겉보기와 달리 소심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어서 이렇게 찾아가서 따지고 그런거 진짜 못하는 성격인데 내가 죽겠는데 못할게 뭐 있나.
거울에 얼굴을 슬쩍 비춰 상태를 확인하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옆집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음악 소리에 초인종 소리가 안 들리는 건지 인기척이 없다.그래서 한 번 더 누르고 문을 두들겼다. 그제야 안에서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음악 소리가 줄어 들었다.
-누구세요.
-옆집 사람 인데요.
반틈 열린 문 사이로 주황색 털뭉치가 비죽 튀어나왔다.
-무슨일이세요.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요,좀 줄여 주셨으면 하네요.
-아,네.
보통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않나...?밀려오는 당황스러움에 문 앞에서 벙쪄있었다.
-뭐,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아뇨,
-그럼 들어가세요.
짜증스럽게 말을 던진 주황 털뭉치가 사라지고 문이 탁 닫겼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찾아가서 제발 음악 소리 좀 줄이라고 별 지랄을 다 떨었는데 옆집 놈은 듣는둥 마는둥 내가 찾아 갔을 때만 소리를 줄이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가 있었다.그 짓을 거의 두 달을 했다. 미운 정 들겠다. 정말로,
오후 6시,이 시간에 퇴근을 하는게 얼마만이냐,행복하다.세상이 환해.
두달만에 프로젝트를 무사히 완료할 수 있었다.
제출한 결과물에 위에서 호평을 들었는지 이 대리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가있었다.
그 덕에 조기퇴근도 시켜준거고
집에 오자 마자 침대로 다이빙해서 모자란 수면 시간을 채우려고 뒤척거리고 있는데 현관쪽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웬 남자가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궁금한 건 못참는 성격이라 몸에 이불을 둘둘 말고 더욱 자세히 듣기 위해 현관문에 귀를 대고 섰다.
-야,권지용.너 진짜 나한테 이러는거 아니다.
-헤어지자고,왜 집까지 찾아와서 지랄이야.
-아니 그러니까 갑자기 왜!
-니가 한짓을 생각해봐,그러고도 갑자기라는 말이 나오냐 너는?미친새끼 진짜,빨리 꺼져라 우리 집앞에서.꼴도 보기 싫으니까.
-이 새끼가 진짜 죽고싶냐?말 좀 곱게해라.예뻐서 오냐오냐 해줬더니,
분위기가 점점 살벌해지는게 저러다 한 대 맞을 것 같아서 아무리 미워도 일단은 이웃 사촌이니까 구해주려고 문을 열고나섰다.
아, 최승현 존나 착하다.
-지,지용아!오늘 우리집에서 맥주 한 캔 하기로 해놓고 거기서 뭐하고 있냐!
목에 핏대 세워가며 싸우던 둘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됐다.
멍하니 있던 옆집 남자가 이내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남자에게 잡힌 멱살을 탁 쳐내고 내 쪽으로 걸어 왔다.
-어,어 그랬지,들어가자. 기다렸어?
-야!씨발 니가 얘 새로운 기둥서방이냐.
뒤로 들려오는 험한 말을 무시한 채 재빨리 문을 닫아버렸다.
혹시라도 문따고 들어 올까봐 달려 있는 잠금 장치란 잠금 장치는 몽땅 사용해서 걸어 잠궜다.
신발도 못 벗고 현관에 어물쩍 서 있던 옆집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뭐..고맙네요,감사해요.
-곤란해보이시길래..하하..,
-네..곤란했네요,
-아..진짜로 같이 맥주 한 캔, 하실래요?
충동적으로 뱉은 말이었다.
-...네, 뭐...좋죠.
술이 약한건지 한 캔에 양볼에 홍조를 띠웠다.
-승현씨?승현씨라고 부를게요?
-네,편하게 부르세요.
-궁금한거 있어요.아까 제 이름,어떻게 아셨어요?
-아,방음이 잘 안되더라구요,본의아니게 대화 내용 다 들어 버렸습니다.
취하면 애교가 많아지는 편인지 아까보다 말도 많아지고 얼굴 표정도 많이 풀려 있었다.말하면서 슬쩍슬쩍 닿아오는 몸이 싫지 않았던 것 같다.
-아...거부감 안 드세요?
-무슨..?
-다 들으셨다며,저 게인데.
-별로 그런거 신경쓰는 사람아닙니다.저도 경험있구요.
-헤에,하긴 그렇게 생겼다.얼굴에 쓰여 있네요,
-하하,그런가요?그런데 아까 그 남자분하고는...
-아,전에 만났던 남자예요,성격도 고약하고 취향도 고약하고,그러는 주제에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가면서 바람이나 펴 대고 힘들어서 헤어지자고 했더니 저렇게 집 앞까지 찾아와서 저 지랄이네요.
다소 싸가지 없는 남자라고 여겨왔는데 이렇게 대화를 나눠보니 또 그런것만은 아닌거다.조금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아,맞다.사과드려야지, 그 동안 죄송했어요.
-네?뭐가요?
-음악 소리요,
-아,뭐 괜찮습니다.
-사실,따지러 오는 승현씨 얼굴이 너무 귀여워서 계속 보고 싶어서 그래서 그랬어요, 용서해주실꺼죠?
이빨을 다 드러내고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씨익 올려 웃는데 용서를 안 할 수가 없는거다.
-하하,그런가요...용서해드리겠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그럼,승현씨 우리 연애할래요?
너무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와서 머리에 저 말이 무슨 의민지 금방 입력이 안됐다. 대답도 안하고 그저 눈 앞의 지용씨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나랑 연애하자고 그런거지? 손 잡고, 데이트하고 그런거?
-에..갑자기...
-아, 미쳤나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제가 지금 좀 취해가지고,
자기도 자기가 뱉은 말에 당황했는지 자기 손으로 양볼을 착착 치며 횡성수설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어어, 승현씨 오늘 고마웠어요, 저 들어가볼게요, 잊으세요 아까 한 말은,
-잠깐만요 지용씨,
-아 진짜 쪽팔리게 저 집에 갈게요, 부르지마요.
성격이 급한 사람이다.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집으로 도망가버렸다.
퇴근하고나서 지용씨를 보기 위해 집 앞에서 기다렸다.
담배도 몇 대 태우고 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렀고, 지용씨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지용씨!
-승,,현씨?
-기다렸어요.
-에,왜요?
-일단 좀 들어갑시다.문 좀 열어봐요.
내가 생각해도 너무 뻔뻔했지만, 사실 좀 추워서 어디든 들어가고 싶었다.
-커피, 드세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왜 기다린건데요?
-어제...그,
-아, 그거 잊어달라고 했잖아요!
-아니 대답 들으셔야죠.
-거절은 안 들어도 괜찮아요.
-네,해요, 연애해요,지용씨 연애합시다.
내 대답을 듣고 500미터 달리기를 마치고 온 아이처럼 뺨을 붉게 물들이더니 내 팔뚝을 찰싹찰싹 때려왔다.
아,지용씨 커피 쏟겠다.
커피잔을 탁자위에 올려두고 때리는대로 맞고있었다.지용씨 손 맵네요.
-왜!왜, 어제 대답 안 했어요!
-하,할려고 했는데, 지용씨가,
-아, 존나, 쪽팔려서 또 이사가야되나 진지하게 고민했단 말이에요!진작 말하지 진짜,어제 말했으면 좋았잖아요...
-그 말만 하고 그렇게 가버리는데 어떡합니까...
-따라와서 말해줬어야죠, 승현씨 바보네.
-알겠어요, 미안해.
팔을 크게 둘러 지용씨를 품 안에 꼭 안았다. 턱 밑으로 닿아오는 오렌지빛 덩어리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내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면서 지용씨가 뭐라고 계속해서 웅얼거렸다.
승현씨 좋아해요. 아마도 내 귀엔 이렇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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