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조로산로우 삼각관계

**사진작가 조로, 게스트 하우스 주인 겸 요리사 상디, 시골로 의료봉사 온 의대생 로우


쨍하게 밀고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찡그렸다. 뒤통수를 따라 흐르던 땀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내리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여행 왔어요? 특이하네, 여기까지는 잘 안 오는데"

설마 나한테 하는 말이겠어, 했지만 주변에는 개미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기에 자신에게 하는 말임이 분명했다. 

네? 하며 뒤돌아보자 내리쬐는 태양 같은 금발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본 것들 중에 가장 가슴 떨렸던 장면이 아니었을까.

지금 있는 곳이 촌 동네라 볼 거라곤 초록색 풀이랑 파란색 물밖에 없을 거라는 남자의 말에 조로는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들어 보였다. 납득했는지 작게 고개를 까딱했다. 그 뒤로도 대화를 좀 나눴지만 남자는 갑자기 왔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이름이라도 물어보지 못한 걸 약간은 후회했던 것 같다. 

초록 풀과 파란 강물을 배경 삼아 작업을 완료하고는, 멍하게 있느라 뭘 찍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예약해둔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갔다. 저녁 시간에 딱 맞춰서 돌아온 건지 투숙객들이 정원에 펼쳐져 있는 테이블에 군데군데 나누어져 밥을 먹고 있었다. 식욕을 돋우는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하고 있었고 갑자기 허기가 지는 기분이 들어 재빠르게 짐을 풀고 돌아와서 식사를 시작했다.

식기들이 서로 부딪쳐서 들리는 딸칵 거리는 소리와 일행들이 작게 떠드는 소리가 조화롭게 울렸다. 앞에 놓여있는 음식만 열심히 우물거리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짚으며 말을 걸었다.

"어? 여기서 또 보네요."

하루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그 목소리였다.

.

.

.

상디는 자신의 요리를 먹는 사람들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한 숟갈을 크게 우물거리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 행복감이 자신에게 그대로 전해져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늘 식사 시간이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밥을 먹기 시작한 사람들 주변을 걸어 다닌다.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 준비를 끝내고 자연스럽게 테이블 주변을 거닐고 있었다. 

낯익은 초록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하며 근처로 다가갔는데, 예의 그 사람이었다. 어깨에 얹혀져 있던 큰 카메라 가방과 곧은 자세와 정적인 눈빛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사실 인상적이었던 것을 뛰어넘어서 마음에 들었다.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 중에 이렇게까지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손에 꼽았는데, 반가운 마음에 여기서 또 본다며 말을 걸었다. 

"어? 여기서 또 보네요."

"아, 여기서 일하세요? 다시 만나니까 좋네요."

조로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을 하자 상디가 옅게 웃으며 음식은 입에 맞냐며 되물으며 자연스럽게 조로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대화를 시작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로우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이 좀처럼 없는 상디가 무슨 일인지 저 근육남에게는 대놓고 호감을 내보이며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로우의 기다란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서 불규칙적으로 톡톡  하고 흐트러졌다.

로우는 상디가 일하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의 장기 투숙객 중 한 명인데, 초반에 둘이 간만보다가 술 마시고 눈이 맞아서 배까지 맞춰 버렸다. 로우랑 상디 둘 다 섹스랑 연애는 별개지! 이런 마인드라 사귄다, 어쩐다 하지는 않고 그 뒤로 둘이 하고 싶을 때 부담 없이 붙어먹는 사이로 발전했다. 

로우는 그동안 상디가 누구한테 작업을 걸던, 누구와 섹스를 하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사실 완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디에게 말을 걸었던 모든 사람들은 관계가 목적이었고 상디는 그냥 거절을 하지 않고 그것에 응했을 뿐인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상디에게 자신만은 좀 특별하다고 생각해 왔고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조금 다르다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상디가 먼저 다가가는 일이 흔치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저 초록 머리가 보이는 반응이 다른 사람들처럼 가볍게 섹스만 한 번 하고 끝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만 보던 로우는 커피를 마시던 컵을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내려 놓고는 상디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이,"

일단 둘이 대화 나누는 것을 멈추고 싶은 마음에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말을 걸었다.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상디를 응시하다가 급하게 담뱃갑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안 나갈래?”

저 초록 머리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을 때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상디는 이렇게 대놓고 질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로우를 보는 것이 즐거웠다. 누가 그랬는데, 질투는 사랑의 반증이라고, 우리 사이에 사랑은 필요 없다고 늘상 말해오던 로우가 온몸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이번엔 쟤냐,"

상디의 입에 물린 담배에 불을 붙여주던 로우가 연기를 뱉어내며 입을 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울렁거리는 기분에 환장하겠는 로우를 앞에 두고 상디는 흐흐 하고 바보 같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저녁에 로우의 방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다시 가보겠다며 초록 머리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상디의 뒷모습을 보던 로우는 작게 욕을 하고는 속이 타는지 담배를 또 꺼내 물었다.


***

삼각관계가 왜 이렇게 좋을까요 미쳤나 진짜,,,  셋이 떡치는 거 쓰고 싶다 ㅎ


'.txt > 한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투하는 조로산  (3) 2018.07.08
조로산 짝사랑하는 상디2  (4) 2018.06.24
조로산 썰 3  (0) 2018.05.20
권태기가 온 조로산  (2) 2018.05.16
로즈데이 조로산 썰  (0) 2018.05.14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