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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위님, 들으셨어요?
-뭐를?
-어제 일향동 사건이요,
-아아, 왜?
-저희 팀으로 넘어 온다네요.
-진작 그럴것 이지, 강력팀 가서 사건 파일 다 받아와라.
-네, 경위님.
특수사건전담팀, 정말 말 그대로 특수한 사건의 해결을 맡고 있다. 가령 '커다란 짐승의 발톱 같은 흉기로 온몸이 찢겨진 피해자'같은, 처음 이 사건을 들었을 때부터 최경위님이랑 나는 웨어 울프라고 예상하고 출동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강력팀에서 자기네 관할이라고 가로채가 버렸다.
근데 위에서는 올라온 수사 기록을 보니까 단순히 엽기 살인 사건 같은 게 아니라 우리팀만 해결 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판단을 한거지. 그러니까 강력팀은 괜히 나서서 개고생만 한거다.
-경위님! 여기 책상위에 올려뒀습니다.
-어, 그래 나가자.
겉옷을 챙기느라 입에 종이컵을 물고 말을 하는 탓에 발음이 잔뜩 뭉게져 있었다.
-아, 지금 당장이요?
-응,운전은 권형사가 할래?
-네, 저번 사건 처리하신다고 제대로 못 주무셨잖아요. 경위님은 좀 주무세요. 도착하면 깨워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3년 전 뉴욕에서 처음으로 ,우리끼리는 오그르(Ogre)라고 부르고 있는, 괴생명체가 등장했고, 정부에선 이를 조용히 묻어버리고 바로 NYPD에 특수반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바로 그때 만들어진 팀이 내가 소속했었던 팀이었다. 처음에 팀이 만들어지고 서로 통성명을 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짬밥도 부족하고, 경찰뱃지 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시기라 어색함에 주변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한참 쭈뼛거리고 있는데 먼저 다가와준 사람이 경위님이었다. 그때부터 급속도로 가까워져서 떨어질 줄을 몰랐고 줄곧 파트너로 지내왔다.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온 탓에 한국에 희미하게 향수가 있었고 경위님과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눈덩이처럼 점점 불어났다.
그 동안에 급격한 속도의 진화를 거친 오그르들은 바다를 건너서 다른 국가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갔고, 세계 곳곳에서 그들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점점 들려오기 시작했다. NYPD는 각 국에 전문 처리팀을 파견하기로 결정을 했고, 경위님이랑 나는 한국지부로 지원을 했다. 아직 한국은 오그르 출현 빈도가 낮아서 감식반에 한 분, 경찰청에서 팀을 총괄하는 한 분, 그리고 직접 발로 뛰는 경위님이랑 나, 이렇게 넷밖에 없다. 뉴욕에 있을 때는 체력도 약하고 덩치도 다른 경찰들에 비해 많이 작은 편이라 보통 유사시 위치 추적이 가능하도록 오그르들의 뒤를 밟아서 GPS를 삽입하는 일을 주로 담당해서 체력적 한계같은 걸 잘 실감하지 못했었는데, 한국에선 직접 잡으러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려니 체력이 부족한 걸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헬스를 끊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경위님, 도착했습니다.
조수석에서 그 큰 몸을 쭈그리고 앉아서 곤히 자고 있던 경위님을 흔들어 깨웠다. 차를 큰 걸로 뽑아야하나. 많이 피곤했는지 두 어번을 더 부르자 그제야 무거운 눈을 겨우 떠 꿈뻑 거렸다.
-아, 벌써? 장비 챙겨서 내리자.
차 트렁크를 열어 특수 스프레이를 챙겼다. 오그르의 특정 호르몬에 반응하는 스프레인데 발자국이나 스친 흔적 정도는 희미하지만 대략적인 구분은 가능하게 해준다.
현장에 둘러쳐져 있는 폴리스 라인을 들어 올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피해자는?
-부검이요.
-그럼 이따 부검실 들렸다가 들어가자.
-네,
시체가 있던 자리 주변으로 스프레이를 뿌렸다.
발자국이 희미한 연두빛으로 빛났다. 주변 풀숲에 스친 흔적들도 꽤나 눈에 띄었는데 아무래도 매복해 있다가 피해자를 덮친듯했다. 발자국이 산 쪽으로 향하다가 사라졌다.아마 바람에 흙먼지가 날리면서 사라진 것 같아 보였다.
-여기서 끊기네, 산 쪽으로 간 것 같지?
-네, 그러네요.
-CCTV 확인은 했대?
-아까 한 순경한테 들었는데, 여기가 딱 사각지대래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 찍혔다고...
-그래, 알겠어. 발자국 분석이나 해보자.
다시 차로 돌아가서 노트북을 챙겨 뛰어왔다.
-이게 제일 선명하다. 이걸로 스캔해봐.
-네,
뉴욕에서부터 수집해 왔던 여러 오그르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발자국을 분석해서 어떤 종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역시 웨어 울프랑 일치하네요, 발자국 너비가 그렇게 크지 않은 걸로 봐서 독립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 일단 팀장님한테 보고하고 오늘은 늦었으니까 돌아가자.
-부검실은요?
-같이 갈래?
-네, 같이 갈래요.
*
-김 선생님, 저희 왔어요.
-아, 이쪽입니다. 최 경위님은 저번에 뵀었는데, 권 형사님은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잘 지내셨어요?
-못 지낼게 뭐 있나요, 아, 이번 피해자는 손상이 너무 심해서 신원 확인도 겨우 마쳤습니다. 얼마나 작정을 했는지, 몸 안에 제대로 남아있는 내장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내가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경위님은 시신에 남아있는 자국들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권 형사, 이리와봐.
-네?
-목덜미에 상처 자국, 웨어 울프는 아닌 것 같은데?
경위님 말을 듣고 피해자의 목 부분을 자세히 살폈다.
뾰족하게 깎아낸 연필로 콕콕 찌른 듯한 자국이 드문드문 있었고 주위 혈관들은 자주색으로 푸르딩딩하게 팽창해있었다. 웨어 울프의 송곳니로는 이렇게 작은 상처는 낼 수 없을 뿐더려 보라색으로 부어오른 혈관의 상태는 독에 의한 반응처럼 보였다.
-김 선생님, 피해자 사인에 독살로 의심되는 부분은 없었나요?
-아뇨, 저도 아무래도 의심스러워서 그쪽으로 검사는 다 해봤는데 별다른 수확은 없었습니다.
-그런가요? 일단 알겠습니다. 추가로 뭐, 더 검사 결과 나오는 거 있으면 바로 연락주세요.
-당연히 드려야죠, 들어가세요.
-권 형사는 더 살펴볼래?
-네, 사진만 찍어서 갈게요, 먼저 나가 계세요.
시신의 상처를 찍고 김 선생님과 짧게 인사를 나눈 후 차로 돌아왔다.
-모기 물린 자국이랑 비슷한 거 같죠? 아무리 봐도 독침인 것 같은데,
-독으로 인한 사망은 아니라고 했으니 직접적 사인은 웨어 울프가 맞을거야.
-네, 심장까지 싹 다 빼간 걸 보면 웨어 울프 짓이 확실하긴 한데, 좀 찝찝하네요. 이것저것,
-그러게, 그래도 일단 확실한 놈부터 추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오늘은 일단 들어가서 쉬고, 내가 좀 더 조사 해볼게.
-아, 경위님, 데려다 드릴게요!
-집 반대 방향이잖아, 시간도 늦었는데 안 피곤하겠어?
-오늘 제 차로 이동해서 경위님 차 안 끌고 오셨잖아요, 택시 타시려는 거 아니셨어요? 제가 기사 해드릴게요, 피곤하면 뭐. 경위님 댁에서 자고 가면 되는거고? 어차피 내일도 얼굴 봐야 하는데,
경위님이 피식 웃더니 내 머리를 잔뜩 헝클었다.
-어이구, 권 형사님, 마음대로 하세요.
-헤헤, 저 오늘 술 마시고 싶은데, 역시 안되겠죠?
-안된다. 권 형사, 이번 사건 끝나면 내가 좋은 거 사줄게 좀 참아.
-네에,
오늘따라 유독 도로에 차가 없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 벌써 경위님 집에 도착해버렸다.
-들어가세요, 경위님.
-뭐야, 자고 가는 거 아니었어?
-에, 진짜요?
-싫음 말고.
-저야 좋죠!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역시 우리 경위님이 최고다.
-경위님, 커피 드시면서 하세요.
-어, 너는 늘 자던 방에서 자면 돼.
-좀 더 있다가요, 제가 뭐 도와드릴 건 없어요?
-그럼 지금 뽑고 있는 거 순서대로 정리 좀 해줄래?
-네,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경위님께 건네고 프린트기 앞에 잔뜩 쌓여있는 종이를 챙겨 경위님 옆에 털썩 앉아 이름순으로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뉴욕 쪽에선 뭐래요?
-상처 하나만으로 특칭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비슷한 상흔 남기는 놈들로 리스트 보내줬어. 지금 네가 들고 있는 그거야,
-헤에, 한국에도 자꾸 늘어나네요, 큰일이네. 저희만으로 부족하지 않을까요? 번식까지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뭐...글쎄다.
-자, 다 됐다. 여기요, 경위님은 안 주무세요?
-자야지,
-적당히 하고 주무세요, 내일 현장 뛰어야 하잖아,
-아무리 피곤해도 너보단 쌩쌩 할 거다. 체력 관리 좀 해. 비실비실 해가지고, 현장 나갔다가 쓰러질까 무섭다.
-에에,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나름 운동도 하고 있구... 하여튼 전 자러 들어 갑니다. 주무세요,
경위님 체취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이불속으로 몸을 눕혔는데, 자꾸 그 날 일이 떠올랐다. 잊혀지지도 않네,
몇 달 전인가 큰 사건 하나 마무리하고 둘이서 삽겹살에 소주 한 잔 하고 알콜이 알딸딸하게 오른 상태로 경위님 집까지 왔는데, 해장해야한다고 경위님이 와인 한 병을 꺼내오셨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잔을 부딪치다가, 조금 이상한 분위기가 흘렀다. 어쩌다가 그런 전개로 흘렀는지 잘 모르겠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침대위에서 끈적하게 입술을 나누고 있었다. 딱 경위님이 내 셔츠 첫 단추에 손을 올리는 순간, 다행인건지 뭔지 긴급 호출이 와가지고 급하게 출동을 했었는데, 그 뒤로 둘 다 그 일에 대해서 없는 일인 척, 기억 안 나는 척, 이렇다 할 말도 없이 넘어가 버려서 지금 경위님이랑 내 사이는 그저 단순한 파트너 관계라고 정의를 내리기엔 굉장히 애매해져버렸다.
방문이 살짝 열리고 경위님이 들어왔다.
-야 지용아,
-...네?
-...아직도 안 자냐,빨리 자라니까,
-네,경위님도 빨리 자요,
-그래,잘 자라.
분명 무슨 말을 하려고 들어 온 걸 텐데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다시 방에서 나가버렸다.사람이 저렇게 솔직하질 못해요.아,내가 할 말은 아닌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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